'조명이 밤을 해치지 않도록...'

단편 <산책자들> 조명감독 맹창수

박은우 실습기자

중학교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푸른 밤거리를 가득 메운다. 모두가 잠든 밤 속을 달리는 하룻밤의 일탈. 화면 속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청소년 시절의 쌉싸름한 공기가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영화를 본 어느 관람객은 이런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날것 같은 화면이 날것이었던 그때 그 시간들과 어울린다."

일탈을 꿈꾸던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단편영화 <산책자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12편의 한국 경쟁 단편작들 중 하나였다. <산책자들>의 장면들은 유난히 어둡다. 한밤중의 학원가, 버스정류장, 아파트 단지. 영화의 대부분이 밤 장면이지만 빛과 공간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한국의 밤거리가 이토록 다채로웠는다는 걸 화면을 보며 깨닫게 된다.

밤거리의 빛을 설계한 이는 조명감독 맹창수 씨(25)다. 그는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의 재학생이다. 촬영 및 조명 경력은 벌써 4년째다. 그의 꿈은 영화 촬영감독이라고 한다. 맹 씨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영화 산책자들에서 쓴 조명을 들고 있는 맹창수 씨
영화 산책자들에서 쓴 조명을 들고 있는 맹창수 씨

Q. 조명감독을 맡은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화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스탭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밀도 높게 작업을 한 작품이어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Q. 영화에서 밤 씬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밤 씬 조명은 어떻게 구상했는가?

<산책자들>의 가장 중요한 컨셉은 ‘사실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다큐멘터리처럼 현실감 있는 조명을 추구했다. 그래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화면이 꽤 어두워야 했는데, ‘노이즈’라는 것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광량이 필요했다. 사실적이면서도 너무 어둡지 않은 조명을 치는 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조명을 마치 안 친 것처럼 은근하고 조심스럽게 구성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Q. 그렇게 구현된 밤 씬들 중 조명이 가장 마음에 드는 씬이 있는가?

주인공들이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몰래 들어갔으니 형광등을 켤 수는 없었는데, 또 너무 어두우면 안 되는 장면이었다.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가 집에 수조를 놓는 방법을 제안했다. 수조에는 보통 어항등이 있지 않은가. 어항등에서 나오는 푸른빛으로 실내를 밝혔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꽤 마음에 들었다. 조명을 배우기 시작한 지가 4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익힌 지식들을 총동원했던 것 같다.

Q. 대학생인데 벌써 촬영, 조명 경력이 4년이다. 조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대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는 영화 관련 학과도 없고 수업도 부족해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할지가 막막했다. 물론 동아리 촬영에서도 어느 정도 실무 경험을 쌓을 수는 있었지만, 전문성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현장에 직접 나가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름메이커스’라는 영화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 공고글을 뒤지다가 상업 조명팀 막내를 구하는 글을 봤다. 무작정 지원을 했고 3-4개월 정도 일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Q. 그때 쌓은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되었겠다.

배운 게 정말 많았다. 거기서 거의 다 배웠다. 우선 여러 종류의 조명기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는 항상 왜 조명을 이렇게 쳤는지’, ‘이 조명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 등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셨다. 그것들을 통해 빛에 대한 이해도를 키웠다. 그동안은 화면을 보면서 ‘예쁘다’, ‘안 예쁘다’ 정도의 생각만 했다면, 그 이후로는 빛을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보이더라.

Q. 그럼에도 조명감독이 아닌 촬영감독을 꿈꾸고 있다고.

맞다. 조명을 배운 것도 결국은 촬영을 잘 하고 싶어서였다. 촬영 감독 역시 화면에서 빛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실제로 조명팀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화면을 보는 시선이 트였고, 이후로 촬영 실력도 가파르게 상승했던 것 같다.

Q. 영화 촬영 감독을 꿈꾸는 이유가 있는가?

사실 가장 처음에는 연출 감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으로 영화를 찍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연출 쪽이 아닌 것 같더라. 글이나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는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기계나 장비를 직접 다뤄서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촬영 감독 쪽으로 넘어갔고, 촬영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비전공자라는 게 항상 컴플렉스였다. 그래서 영상을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싶다. 그 이후로는 기회가 되는 대로 현장 경험을 쌓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촬영 감독으로서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앞으로의 목표이다.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화면을 생각하고 구현해낼 수 있는 촬영 감독이 되고 싶다.